마쓰에의 역사

신지코 호수와 나카우미 호수를 좌우에 끼고 있는 물의 도시 마쓰에는 지금과 같이 오하시가와 강의 주변부가 중심지인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그보다 호수 아래쪽 지금 시내의 남쪽 지역이 오래전부터 고대 국가의 중심지로서 더욱 번영한 곳이었습니다. 마쓰에와 이즈모를 비롯한 시마네의 동쪽 지역은 지금의 일왕가의 조상인 야마토(大和)조정이 주변부를 정복하고 일본이라는 나라를 세우기 전부터 이즈모(出雲)라고 불린 세력권을 형성하고 있던 지역입니다.

이즈모는 포항의 영일만에 전해져 오는 연오랑과 세오녀 전설에서 이 부부가 떠내려 온 곳이 시마네라고 여겨질 정도로 한반도와 거리가 매우 가깝기 때문에(직선거리 약 360㎞) 한반도에서 철기를 비롯한 여러 문명을 받아들이며 발전한 고대국가라고 합니다.

이러한 찬란한 문화를 이룩한 고대국가 이즈모는 야마토 조정에 통치권을 양보하면서 야마토 정권에 흡수됩니다. 그 후에도 남쪽 시가지에는 지방관청인 고쿠분지(国分寺)가 설치되어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가 상주하며 주변을 다스려 지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성읍도시

 

 

한가로운 어촌마을이던 마쓰에를 새로운 시대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개발이 시작된것은 도시의 중심지가 될 마쓰에성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축성에 일가견이 있었던 호리오 요시하루는 먼저 간 아들 타다우지의 유지를 받아 1607년 가메다(亀田)산에 성을 짓기 시작합니다.

 

5년이란 축성 기간 중 3년을 석벽 만들기에 투자했을 만큼 돌쌓기는 고되고 많은 노동력이 필요로 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성의 중심인 천수각을 비롯하여 마쓰에가 도시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611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완성된 마쓰에성은 산노마루(三の丸), 니노마루(二の丸), 혼마루(本丸)3개 구역으로 나누어지면 6개의 망루와 30미터 높이의 천수각으로 이루어진 웅대한 모습의 성으로 특히 천수각 지붕의 곡선이 마치 물떼새를 보는 듯하다 하여 물떼새성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아름다움까지 겸한 성이었습니다.

이후로도 마쓰에는 에도시대 260년을 포함하여 오늘날까지 400년간 시마네 지역의 중심지로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호리오 가문 (1600년~1633년)

 

호리오 요시하루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 후, 이즈모와 오키 지방을 하사받은 아들 타다우지와 함께 도다성(히로세)으로 입성하였지만, 지역적 조건이 우수한 마쓰에로 성을 옮겼습니다.

 

교고쿠 가문 1634년~1637년

 

교고쿠 타다타카

3년 남짓의 짧은 통치 기간이었지만, 역대 마쓰에 영주 중에서도 가장 넓은 영지를 통치했습니다.

마쓰다이라 가문 1638년~1871년

 

마쓰다이라 나오마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로 1614년, 14세의 나이로 오사카 겨울 전투에 참전하여 첫 출진임에도 역전 분투하였습니다. 적장 사나다 유키무라는 그의 용맹함을 극찬하며 쥐고 있던 자신의 부채를 던졌다고 합니다.

 

 

후마이공

마쓰다이라 하루사토(후마이공)

마쓰에 7대 영주로 젊은 시절부터 다도와 선도를 배워 독자적인 유파를 확립하고, 현재에도 후마이류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 후기의 다이묘이자 다인으로 도예, 옻칠 공예 등을 부흥시키며 차의 명산지 마쓰에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호란엔야 & 큰북행렬

 
호란엔야 축제에 참여하는 배
호란엔야 축제 중 신에게 바치는 춤을 추는 무희
큰 북 행렬
<호란엔야>

1648
년 변덕스러운 날씨로 이즈모 지방의 대흉작을 걱정했던, 당시 마쓰에의 영주 마쓰다이라 나오마사 공이 조잔이나리 신사와 아다카야 신사의 신직을 겸무하고 있던 신관에게 오랜 시간에 걸쳐 풍작을 기원하게 한 것이 호란엔야의 시작으로 ​이후 370년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답니다.


10년에 한 번 열리는 호란엔야 축제는

마쓰에성 내에 있는 조잔이나리 신사에 모셔진 신을

약 10km 떨어진 히가시이즈모초의 아다카야 신사까지 배로 모셔

7일 간에 걸쳐 이즈모 지방의 안정과 풍작을 기원한 뒤

되돌아오는 배를 이용한 축제입니다~

 



호란엔야 축제 2019 링크
https://shimanekko.blog.me/221511148632


<큰북행렬>

 

축제의 유래는 마쓰에성이 세워진 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마쓰에번이 생긴 것을 기념하여 생긴 축제랍니다.

직경 1.2m – 1.8m 정도의 커다란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 시내를 행진하는데 동네별로 다른 복장, 리듬에 맞춰 북을 치기 때문에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큰북행렬은 매년 10월 셋째 일요일에 열리는데 한달 전부터 각 동네에서는 큰 북 보관고에 있던 북을 합심해서 꺼내고 저녁마다 북 공연 연습에 여념이 없답니다. 이 시기에 마쓰에에 오시는 분들은 해질 무렵이 되면 여기저기서 북 소리가 들려올 거예요. 

큰북행렬 2019 링크 
https://shimanekko.blog.me/221670859360

후마이공 - 다도와 화과자

 
마쓰다이라 나오마사 (후마이공) 초상화

마쓰다이라 하루사토(후마이공)

마쓰에 7대 영주로 젊은 시절부터 다도와 선도를 배워 독자적인 유파를 확립하고, 현재에도 후마이류로 계승되고 있습니다. 에도시대 후기의 다이묘이자 다인으로 도예, 옻칠 공예 등을 부흥시키며 차의 명산지 마쓰에의 기초를 세웠습니다.

 

라프카디오 헌 또는 고이즈미 야쿠모

 

⦿패트릭 라프카디오 헌(고이즈미 야쿠모)은 1850년 6월 27일 그리스 서부의 레프카다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찰스는 아일랜드 출신의 군인이었으며, 어머니 로자는 그리스 키티라 섬 출신이었습니다. 아일랜드는 당시 독립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헌은 영국 국적이었습니다.

⦿헌이 두 살이 되던 해 아일랜드로 이주한 뒤 영국과 프랑스에서 가톨릭 교육을 받았으나 그 교육에 대해 의심을 품기 시작합니다. 16세에 왼쪽 눈을 실명. 19세에 부모님을 대신하여 헌을 양육하던 고모할머니가 파산한 뒤 홀로 미국으로 이주. 궁핍한 생활을 보내던 그는 신시내티에서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글재주를 인정받게 됩니다. 그 후 루이지애나 주의 뉴올리언스, 카리브 해의 마르티니크 섬으로 이주하며 문화의 다양성에 매료되어 왕성한 취재, 집필 활동을 이어갑니다. 뉴올리언스의 만국박람회에서 접하게 된 일본 문화, 뉴욕에서 읽었던 영어로 번역된 일본 역사서『고지키(古事記)』 등의 영향을 받아 일본으로 갈 것을 결심한 헌은 1890년 4월 일본 땅을 밟습니다.

⦿같은 해 8월에는 마쓰에의 시마네현 진조중학교에 영어교사로 부임. 그 후 구마모토 제5 고등중학교, 고베 크로니클사에서 근무한 뒤, 1896년 9월부터 도쿄제국대학(지금의 도쿄대학)의 문과대학 강사로 초빙되어 영문학을 강의합니다. 1903년 제국대학에서 해고된 후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에게 후임을 넘긴 그는 와세다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습니다.

⦿1896년에는 마쓰에 무사 가문의 딸인 고이즈미 세쯔(小泉セツ)와 정식으로 결혼한 뒤 일본으로 귀화. 3남 1녀의 행복한 가정을 꾸립니다. 작가로서는 번역, 기행문, 재화(再話) 문학의 장르를 중심으로 약 30권의 저서를 남겼습니다.

⦿1904년 9월 26일 심장발작으로 54세에 생애를 마감합니다.

⦿현재 마쓰에 시에는 고이즈미 야쿠모 기념관, 고이즈미 야쿠모 옛집 등 고이즈미 야쿠모 관련 시설이 있으며, 고이즈미 야쿠모 괴담의 배경이 되는 곳도 적지 않게 있습니다.